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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은 백제의 궁궐터로 전하는 왕궁평성 안에 우뚝 서 있는 높이 8.5m 의 왕궁리오층석탑(王宮里五層石塔)은 그 전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왔었지만 이 탑의 학술적 가치가 높이 인정됨에 따라서 1997년에 국보로 재지정 되게 되었다.
탑의 생김새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시기의 설정에 있어 의견이 구구하였다.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주장이 있어왔는가 하면, 1965년 이 탑의 해체 복원공사 전까지만 하여도 옥개양식(屋蓋樣式)에서 백제탑계(百濟塔系)를 따르고, 탑신부의 돌 결구수법(結構手法)과 층급받침 수법에서 신라석탑을 따르고 있으므로 통일신라(統一新羅) 초기의 작품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발굴결과 탑의 하부에서 다져 쌓기로 조성된 건물지 흔적이 발견되어 조성연대는 백제시보다 다소 늦은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이 탑의 첫인상을 보면 백제탑(百濟塔)의 인상을 짙게 풍긴다. 단층기단과 얇고 넓은 지붕돌 등 전체적 이미지가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定林寺五層石塔)과 많이 닮았다. 탑신의 체감률이 적은 데서 오는 가녀린 느낌, 지붕돌 모서리의 상쾌한 들림에서 오는 경쾌함 등 대립적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한눈에 아름다운 백제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백제탑이라는 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탑신부(塔身部)의 돌 짜임의 기법과 3단으로 된 지붕돌 층급받침의 기법에서 신라석탑의 양식이 보이므로 통일신라 초기의 탑으로 보는 설도 제기 되었다.
현재 이 탑이 고려 초기의 탑이라고 일단락 되게 된 것은 1965년 오층석탑의 해체복원 후의 일이다. 해체 보수되기 전까지만 하여도 토단을 갖춘 희귀한 석탑으로 알려진 것이었으나, 해체 발굴에 의하여 이 탑은 원래 돌로 만든 기단을 구비하였던 것임을 밝히게 되어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이 때 밝혀진 기단의 구조는 지면에 지대석(地臺石)을 깔고 얕은 하대석(下臺石)을 올린 뒤에 몇 개의 판석으로 기단 중석을 짰는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2주가 표현되었다.
갑석(甲石)은 폭이 좁고 평박하며 밑에는 부연이 있고 위에는 경미한 경사가 있는 가운데 탑신 고임이 있다. 기단석면에는 두 탱주를 구비하였으며, 1층탑신에는 우주를 각출한 주형의 4우석과 탱주가 조각된 중간면석으로 된 여덟 장의 편풍돌로 짜여졌고, 2층은 사면 1석씩, 3층 이상은 2매씩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 우주석을 조각하였다. 옥상의 경사는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도 경미한데, 옥신(屋身)을 받치기 위하여 다른 돌을 끼워 놓았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그리고 부서진 보륜(寶輪)1개가 남아 있다.
또한 오층석탑을 축조할 때 밖으로 노출되는 부분은 새로운 석재를 사용하고, 탑신 내부의 구조물들은 이전 건물지에서 채취 전용했다는 것과, 기단부 석재의 양식 등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이어서 1970년대 중반 왕궁평성(王宮平城)의 발굴과정에서 관궁사(官宮寺) 와 같은 사명(寺名)을 가진 명문기와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고려 초기설을 뒷받침 하는 것이다. 그리고 1989년 이후의 종합적인 발굴에 의해서 그 윤곽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석탑의 특징에서도 설명이 된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國敎)로 삼았으므로 불교의 교세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고, 불교 미술(佛敎美術)의 성행은 당연한 것이었다. 불교의 가장 중심적인 예배의 대상이었던 석탑의 조형은 활발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신라의 왕도 중심의 일률적인 건탑양식(建塔樣式)에서 벗어나 각 지방의 토착세력(土着勢力)이 건탑에 관여함으로써 과거의 일률적인 규범보다는 제나름의 특징이 반영되어 다양한 건탑 양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려의 석탑은 지방적(地方的)인 특색을 현저하게 나타내고 있다.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는 어느 정도 신라석탑(新羅石塔)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 세부에 변형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예천 개심사지의 5층석탑(開心寺址五層石塔)과 칠곡에서 경복궁으로 옮겨 세운 정두사지의 5층석탑(淨兜寺址五層石塔)을 들 수 있다.
개성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남계원의 7층석탑(南溪院七層石塔), 현화사 7층석탑, 흥국사석탑 등과 같이 고구려석탑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는 일반형·방형 중층탑이 고려석탑으로서 특징을 지니면서 유행하였다. 백제의 옛 땅인 충청남도와 전라도 지역에서는 백제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옥개석이 모두 판석형이고 대개의 경우 받침석이 별개의 돌로 만들어져 목조가구(木造架構)의 일면을 보이고 있으며 익산 미륵사지의 석탑과 부여 정림사지의 5층석탑의 각부를 모방하고 있어 백제계(百濟系)의 고려석탑 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이다.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부여 무량사의 5층석탑(無量寺五層石塔), 부여 장하리의 3층석탑(長蝦里三層石塔), 익산 왕궁리의 5층석탑(王宮里五層石塔), 정읍 은선리의 3층석탑(隱仙里三層石塔), 옥구 죽산리의 3층석탑(竹山里三層石塔)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보듯이 왕궁리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유행하여 건조되었던 백제계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